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술라웨시 섬 (문단 편집) ===== 17세기: 고와 패권과 마카사르 전쟁 ===== 부기스 삼각 동맹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고와는 술라웨시의 다른 여러 지역과 소순다 열도, 동칼리만탄 등 해외에서 영향권을 확장하며 지속적으로 세를 늘려 나갔다. 17세기 초반, 1605년부터 군주가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술탄국이 된 고와는 주도면밀하게 부기스 삼각 동맹 내부에 균열을 내 갔다. 동맹의 말석이자 가장 약한 고리였던 소펭의 군주가 고와의 권유로 1609년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고와의 편을 들기 시작했다. 이어 1609~1610년 와조의 지도자(아룽 마토아)도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고와는 이슬람을 구심점으로 군사적, 정치적 영향력도 적절히 행사하며 부기스 세력들을 포섭해 갔다. 최종적으로 삼각 동맹의 수장인 보네까지도 1611년 군주가 이슬람을 받아들였다.[* 10대 군주인 텐리투푸(We Tenrituppu, 재위 1602~1611)가 개인적으로는 1611년에 보네 군주 중 최초로 이슬람으로 개종했지만, 군주가 열의를 가지고 정식으로, 또 국가적으로 이슬람을 받아들인 것은 12대 텐리팔레(La Tenripale, 재위 1611~1631)였다. 보네에서 '[[술탄]]' 혹은 '술타나' 칭호를 처음 쓴 것도 술탄 압둘라(Sultan Abdullah)를 칭한 텐리팔레로, 이 때문에 텐리투푸(여성)는 무슬림 군주이기는 했지만 '술타나' 칭호는 없다.] 이후에도 삼각 동맹은 여전히 유지되었지만, 1610년대부터 고와가 삼각 동맹을 인정하고 삼각 동맹이 이슬람의 적에 대항해 고와와 함께한다는 식이 되어 고와에 대항한 부기스 국가들의 공동 전선은 무색해졌다. 점점 더 와조는 고와와 가까워져 1620년대 후반 와조의 지도자는 고와 군주가 수도를 비울 때 와조군이 고와의 수도를 지켜주겠다는 제안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반대로 부기스 삼각 동맹 내부의 결속은 1620년대와 1630년대를 거치며 삐걱거렸는데, 급기야 보네가 알력을 빚은 와조의 지방 페네키(Pénéki)를 공격하고 약탈하면서 동맹의 두 지도국인 보네와 와조가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이때 고와가 개입하여, 와조 및 소펭과 함께 보네를 공격하고 승리하여 마침내 1643년 보네를 고와의 속국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결국 이를 기점으로 17세기 중반, 고와가 삼각 동맹을 완전히 굴복시키고 남술라웨시의 패권을 획득하였다. 고와와 협력한 하위 파트너 와조도 나름대로 이득을 얻어 많은 보네인들이 와조로 끌려와 강제 노동을 하게 되었다. 이에 보네 지역은 고와와 와조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게 되었다. 1607년 이래 고와의 군주들은 출신을 막론하고 외국 상인을 환영하는 정책을 취했다. 1613년에는 [[영국]]인이 마카사르에 공장을 지었을 정도였다. 비슷한 시점에, 동인도로 진출해 영국, 포르투갈, 스페인 세력과 경쟁하며 점차 셋 모두를 물리치고 인도네시아 군도에서 가장 유력한 유럽 세력으로 발돋움해 나가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남술라웨시에도 도래했다. 네덜란드 세력은 처음에는 지역 국가들과 무역을 하려 했으나, 강대한 고와의 세력은 17세기 중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이익 주장을 관철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 1660년대, 동인도 회사는 고와를 포함한 남술라웨시 지역 국가들을 힘으로 억눌러 영향권으로 편입하려 시도했다. 1666년에 고와의 술탄 하사누딘(Hasanuddin)이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무리한 요구에 반발해 전쟁(마카사르 전쟁, 1666–1669)을 벌였다. 이 전쟁에서 동인도 회사는 특히 보네의 왕자 아룽 팔라카(Arung Palakka, 1634/1635–1696)가 이끄는 보네와 연합하였다. 지역의 유력 세력이었지만 고와의 속국으로 떨어져 칼을 갈고 있던 보네는 쓸모 있는 동인도 회사의 동맹이었고, 동인도 회사와 보네의 연합군은 1667년 마카사르를 점령하는 등 전황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구 삼각 동맹국 중 와조는 고와의 편에 서서 보네 및 동인도 회사와 싸웠고, 소펭은 내부 사정으로 친고와파와 친보네파로 양분되었다. 전쟁 초기 국면에 1667년 11월 18일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고와와 동인도 회사 간에 체결된 붕아야 조약(Perjanjian Bungaya)은 이후 약 150년간 지속되며 네덜란드와 남술라웨시의 관계를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남술라웨시에서 무역할 수 있는 유일한 유럽 세력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였으며, 남술라웨시인은 군도 내에서 발리, 자바, 팔렘방, 바타비아, 반튼, 잠비, 조호르, 칼리만탄으로만 항해할 수 있고 마카사르에서 동인도 회사의 허가를 얻어야 했다. 그러나 고와는 쉽게 굴복하지 않았다. 붕아야 조약의 불평등성은 고와 술탄 하사누딘을 분노케 했고, 이런 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사실은 남술라웨시뿐 아니라 [[반자르 술탄국]] 등 인접 지역까지 빠르게 퍼져 동인도 회사에 대한 경각심을 키웠다. 결국 술탄 하사누딘은 전쟁을 재개해 끈질기게 저항하여 동인도 회사에 많은 피해를 입혔으나, 힘이 다해 패배하고 1670년 6월 12일 퇴위했다. 마카사르 전쟁은 동인도 회사가 동인도 지역에서 17세기에 겪은 전쟁들 중 가장 길고 격렬한 것 중 하나로 평가되었다. 승리한 아룽 팔라카는 1672년 보네의 15대 군주(재위 1672–1696)로 즉위했다. 동인도 회사령이 된 마카사르에는 로테르담 요새가 건설(1673년 착공, 1679년 완공)되었다. 마카사르 전쟁 이후에도 고와 술탄국과 보네 술탄국은 네덜란드의 영향권 아래에서 존속하였으나 완전히 복속된 것은 아니었다. 전쟁에서 패배하여 크게 약화된 고와는 더 이상 패권국이 아니었지만,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로서도 지역에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이 제한되어 있어 지역 국가들을 보호국화할 수도 없었고, 네덜란드와 친교를 유지하는 보네와 제휴하며 지역 사정을 잘 아는 보네를 거쳐 붕아야 조약의 틀 안에서 네덜란드에 유리하게 지역 무역을 통제하는 것 이상으로 정치적 강제력을 행사할 수도 없었다. 전쟁이 끝난 17세기 후반, 아룽 팔라카 치하의 보네 술탄국은 남술라웨시 역내에서 네덜란드와 제휴하여 고와 다음의 새로운 패권국이 되었다. 그러나 보네의 패권 역시 오래 가지 못했다. 1696년 카리스마를 갖춘 지도자 아룽 팔라카가 사망하자, 보네는 남술라웨시 역내 각국에 대한 영향력을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8세기 남술라웨시에서는 다시 지역 국가들 각국이 네덜란드의 무역 통제를 벗어나거나, 네덜란드의 지역 거점을 공격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